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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조 풀이

金浩 2008. 7. 19. 09:13

 

설화에 의하면, 황진이가 실로 흠모(欽慕)했던 남성은 화담(花潭) 서경덕(徐敬德) 선생이었다고 하나 황진이를 제자로 거두었을 뿐, 그녀의 유혹은 성리학자(性理學者)답게 뿌리쳤다고 합니다.
  하지만 또 다른 야사(野史)에 의하면 그가 지은 초막(草幕)에서 그에게 글을 배우러 다니던 황진이를 생각하며, 다음 시조 한 수를 남겼다고 전해지지요.

 


  마음이 어린 후(後)ㅣ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
  만중운산(萬重雲山)에 어내 님 오리마난
 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혀 �가 하노라.
<출전 : 진본 청구영언>


  <현대어>

  마음이 어리석은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
  구름이 겹겹으로 쌓인 깊고 높은 산(내가 살고 있는 산중 초막에)에 어느 님이 올까마는
  (그래도) 지는 잎 부는 바람소리에 행여 그이인가 하노라.

 


  재미있는 것은, 황진이가 죽은 후에 조선 시대 최대의 풍류객(風流客) 남아(男兒)로 유명한 백호(白湖) 임제(林悌 1549-1587)평안도사(平安都事)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송도(松都) 개성(開城)에 들러 황진이 무덤을 찾아가 그녀의 묘(墓)에 술을 뿌리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고 애달파했다는 이야기입니다.

 

  청초(靑草)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
  홍안(紅顔)을 어듸 두고 백골(白骨)만 무�난이
  잔(盞) 자바 권(勸)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 하노라
.<출전 : 진본 청구영언>


  <현대어>

  푸른 풀만이 우거진 골짜기 무덤에 자고 있느냐, 누워 있느냐?
 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어디 두고 백골(白骨)만 묻혔느냐?
  술 잔(盞) 잡아 권할 이(사람) 없으니, 그것을 슬퍼하노라. 

 

   백호(白湖) 임제(林悌)는 왕명(王命)을 받드는 관리(官吏)가 죽은 기생(妓生)의 무덤을 찾아가 그 앞에서 울면서 이 시조(時調)를 지어 불렀다하여, 양반(兩班)의 체통을 떨어뜨렸다는 조정(朝廷)의 탄핵(彈劾)을 받아 벼슬에서 파직(罷職)을 당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. 가위(可謂) 황진이가 어느 정도의 명성(名聲)을 지닌 기생이었는가를 알 만한 일화(逸話)이지요.

 


  그것은 그렇다 치고, 황진이만월대(滿月臺)로 종친(宗親) 선비 벽계수(碧溪守)를 유혹하여 그 앞에서 명월(明月)을 배경으로 읊었다는 다음의 시조(時調)는 그녀가 이성(異性)을 향해 읊은 첫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.
  그러나 이 시조는 애틋하다기보다는 유혹적인 내용의 작품입니다.


  청산리(靑山裏) 벽계수(碧溪水)ㅣ야 수이감을 자랑마라
  일도창해(一到滄海)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
  명월(明月)이 만공산(滿空山)하니 수여간들 엇더리.
<출전 : 진본 청구영언>


  <현대어>

  푸른 산 속 푸른 골짜기를 흐르는 물이여!  빨리(쉬) 흘러가는 것을 자랑하지 마라
  한 번 푸른 바다에 도달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
  밝은 달이 빈 산에 가득히 비치니 쉬어간들 어떠랴.  


  다음의 황진이 시조(時調)들은 '임'을 향한 애틋한 여인의 정한(情恨)을 읊은 시가(詩歌)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. 모두 <진본(珍本) 청구영언(靑丘永言)>에 수록되어 있습니다.


  내 언제 무신(無信)하여 님을 속였관대
  월침삼경(月沈三更)에 온 뜻이 전혀 업내
  추풍(秋風)에 지난 닙소�야 낸들 어이하리오.


  <현대어>

  내 언제 신의 없어 임을 속였기에
  달마저 기운 한밤중에 온 뜻이 전혀 없네
  가을 바람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찌하리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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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동지(冬至)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
  춘풍(春風)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
 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.


  <현대어>
  
 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
  봄바람처럼 향긋하고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뭉쳐 넣어 두었다가
  정든 님 오신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놓으리라.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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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산(山)은 �산(山)이로되 물은 �물 안이로다
  주야(晝夜)에 흘은이 넷물이 이실쏜야
  인걸(人傑)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안이 오노매라


  <현대어>

  산(山)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
  밤낮으로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?
  뛰어난 인물도 물과 같도다. 가고 아니 오는구나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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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어져,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다냐
 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제 구태야
  보내고 그리난 정(情)은 나도 몰라 하노라.


  <현대어>

  아, 내가 하는 일이여! 그리워 할 줄을 몰랐더냐?
  있으라 했으면 갔을까만 제가 구태여
  보내고 그리워하는 심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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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청산(靑山)은 내 뜻이오 녹수(綠水)난 님의 정(情)이
  녹수(綠水) 흘너간들 청산(靑山)이야 변(變)할손가
  녹수(綠水)도 청산(靑山)을 못니져 우러예어 가난고


  <현대어>

  (변함없이) 푸른 산은 나의 뜻이요, (변함없이) 푸른 물은 임의 뜻이라
  푸른 물이 흘러간들 푸른 산이 변할소냐?
  (하지만 흘러가는)푸른 물도 청산(靑山)을 못 잊어 울며 흘러가는구나.